감사의 제사로 감사 결핍증을 제거하자

어떤 신문 논설에 ‘한국인의 감사 결핍증’에 대한 글이 실렸습니다. 왜 우리가 감사 결핍증에 빠져있을까요? 그 필자는 상대적 빈곤감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현대인들은, ‘더… 더…’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소리는 악의 소리이며 욕망의 소리입니다. 이 욕망의 소리를 내려놓아야 삶이 자유로워집니다. 어느 사회나 빈부격차 문제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가진 것에 만족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느니라.”(눅 12:15)고 하셨습니다. 어떤 집사님 부부의 아들이 동남아여행 도중 사망했습니다. 아들을 잃은 아픔을 기도하며 치료하던 중에 아들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추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들 이름으로 교육관 음향시설 설비자금 일천만 원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교회 뒷자리에 앉아 이 소식을 들은 어느 남자 집사님이 갑자기 아내의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속삭였습니다. “우리도 아들 이름으로 하나님께 뭔가 드립시다.” 그러자 그녀의 아내는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우리 아들은 죽지 않았잖아…!” 그러자 남편은 “그러니까 더 바쳐야지!” 죽은 아들을 위해서 감사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지만, 살아있는 자녀를 위해 감사하는 것은 더 지혜로운 감사가 아닐까요?

  예전에 우리는 걷지 않고 버스만 타도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가용을 가져도 불만이 가득합니다. 이전에는 쌀밥만 먹을 수 있어도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근사한 곳에서 맛있는 식사를 해도 불만이 쌓입니다. 현대인은 상대적인 빈곤 때문에 더 괴로워합니다. 나보다 더 가진 자들과 끊임없이 비교합니다. 그러니 어찌 만족이 있겠습니까? 감사를 모르고 감사를 표현하지 않는 사람들은 삶에 기쁨이 없습니다. 늘 욕구불만이 가득합니다. 따라서 행복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이기적인 삶입니다. 반면에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하며 다른 사람에게 감동과 기쁨을 줍니다. 레위지파 음악가였던 ‘아삽’은 시편 50편에서 우리들이 드리는 감사의 예배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 찾아가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자체만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습관적이고 형식적으로 제사는 드렸으나 간절함과 진실함, 사모하는 심령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형식주의에 빠지게 되었고 점점 마음이 굳어져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삽은 하나님께 어떻게 예배드려야 하는지 강조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감사의 제사’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향해 감사와 기쁨, 사모함, 간절함을 가지고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하신 모든 것에 마음을 다해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런 ‘감사의 제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라는 말씀이 새번역 성경에는 “네가 나를 높일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높이는 것,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춤추실 정도로 기쁘시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에게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그것은 세상의 구원이 아닌 당신의 구원을 보이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말씀 속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뉘앙스는 “내가 한 번 구원과 축복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주겠다.”는 것입니다. 정말 감사하기 어려운 상황을 우리가 만날 수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은 달갑지 않은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야 말로 하나님을 즐겁게 하는 제사가 되어 감사결핍증을 치료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부합되는 말씀이 바로 솔로몬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일천번제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때 하나님이 감동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구원과 축복의 본보기로 솔로몬이 구한 지혜뿐만 아니라 부귀영화, 권세, 장수, 모든 능력들을 주셨습니다. 우리 한번 하나님이 춤추실 정도로 하나님을 행복하게 만들어 봅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참으로 많은데 우리는 은혜를 자꾸 잊어버립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가장 잘 표현한 말 가운데,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을 잘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불평과 원망은 돌에 새깁니다. 그래서 원한이 오래갑니다. 반면에 축복과 은혜와 감사는 물에 새기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해주신 좋은 것은 다 잊어버린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이렇게 살면 예수님을 믿어도 구원의 감격은 사라집니다. 매순간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삶, 축복의 삶은 기억에서 없어져버립니다. 힘들고 어려워서 감사를 잊은 것도 어리석은 일인데, 이미 받은 은혜와 축복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와 축복을 감사할 줄 모르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시편 기자의 마음이 우리 마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 116편)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 2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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