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가 고대하는 인성

영국의 지성인 버트런드 러셀 경은,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은 서로 반비례한다.’ 는 말을 남겼습니다. 오늘날 물질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즉 인성(人性)에 위기가 찾아왔다는 뜻입니다. 인내심도 잃었고, 희생정신도 잃었고, 그렇게 풍성하던 감정들도 잃어 버렸고, 예의도 잃었고, 감사하는 마음까지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아주 삭막하고 메마른 마음들만 남았습니다. 인간에게서 가장 깊이 오염된 소유욕만 남았습니다. 어린아이 때 집착하여 놓지 않으려 했던 보잘 것 없는 낡은 담요나 베개 혹은 부서진 장난감이… 성인이 되어가면서는 보다 큰 자전거로, 자동차로, 집으로 대체되었고, 인형이 자라서 남자친구로, 여자 친구로, 그리고 남편으로, 아내로, 소유의 대상이 커져만 갔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성경은 우리에게 놀라운 유산(遺産)을 소개해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확신하신다면, 집, 산, 땅, 차에 눈독 들여 재산 목록을 등기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티끌에 불과한 반면에, 삶의 의미를 알고 목적을 분명히 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녀로 확신이 선다면 온 우주를 상속(相續)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인간은 과연 얼마나 가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가지느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큰 것을 잃어버리고 작은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은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즉 그리스도교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떠나는 것 즉 출가(出家)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몸이 구별되어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오염된 소유에서 마음이 놓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롯의 아내가 소돔과 고모라에서 나오긴 했으나, 완전히 그 마음이 출가하지는 못해서 비극을 자초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광야에 나오긴 했으나, 역시 그 마음이 완전히 애굽에서 출가하지 못함으로 인해 불행을 겪고 말았던 것입니다. 필자는 금년 사순절 기간을 보내면서, 우리가 참다운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으로부터 온전히 출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를 묵상하다가 발견한 구절이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예수의 마음이니“ 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종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하나님 뜻에 복종하셨다”(빌 2:5~11)고 합니다. 이 마음을 품어 보려고 애쓰던 수많은 신앙의 선조들이 순교의 피 흘림의 대열에 동참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사도요한의 제자 폴리캅, 스데반 집사… 이들은 하나같이 이 길을 당당하게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살고 있는 오늘 이 시대에는 이 같은 신앙의 멋이나 당당함을 상실해 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자꾸만 자신의 이익만을 우선하고 그래서 자꾸 삭막해지고 메마르고 포악해져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가장 기본적인 이유를 IQ라는 지능지수만을 강조한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사람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IQ(Intelligence Quotient)는 지적 능력, 판단력, 재치, 기지를 가리킵니다. 이를테면 머리 회전 능력이 빠르다는 뜻입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사람이 사람됨에 있어서 IQ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플러스해야 할 것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EQ(Emotion Quotient)라고 하는 감성지수입니다. 이 말은 감정, 정서, 풍성한 인성을 가리킵니다. 사람이 사람다워지려고 하면 감성이 있어야하고, 인성이 있어야 하고, 인간미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눈물이 있고, 따뜻함이 있고, 정서가 있고, 인정이 있고, 풍성한 감정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회가 IQ만을 너무 중요시한 결과, 그저 지식과 머리회전만 빠르게 해서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만 중요하게 가르쳐 놓았기에 감성이나 인간미나 정서 따위는 무관심하고 경시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 이고 우리 그리스도인은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야한다는 것입니다. IQ, EQ가 골고루 갖추어진 사람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며 능력 있는 사람으로는 훌륭하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신앙인으로서는 부족합니다. 여기에 완벽한 요소 한 가지가 더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소위 SQ(Spirit Quotient)라고 하는 영성지수 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가장 이상적인 사람은 인간답고 사람다워지는 IQ와 EQ가 잘 조화될 뿐 아니라, 거기에 SQ까지 즉 ‘영성’까지 잘 조화될 때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가장 하나님 보실 때 사람다운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눈물이 있고, 인정이 있고, 지혜가 있으며, 희생이 있고, 종의 모습으로 살 수 있고, 의지가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신앙적으로 잘 조화된 이상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영성은 사람으로 하여금 종으로 살도록, 겸손하게 살도록, 희생정신을 갖도록 해줍니다. 또 자기영광 보다는 자기희생을 더 큰 기쁨으로 수용하게 되는 신비스러운 능력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줍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게 하는 믿음을 갖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폴 토머스’ 씨는 한국에 주둔해 있는 미국 군인으로 계급은 소령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한국의 고아를 입양해서 길렀습니다. 그것도 온전한 아이도 아닌 장애아를 데려다가 길렀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는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를 졸업한 장래가 촉망되는 직업군인인데다가 곧 중령으로 진급 예정자였는데, 이 아이가 장애인으로 살아가려면 시설이 잘되어 있는 미국으로 데려가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하고 전역을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조만식 선생님은 오산학교 교사시절 제자였던 주기철 목사님을 본인이 소속한 교회의 담임목사로 초빙해서 주님과 교회 그리고 목사님을 정성껏 섬기셨던 훌륭한 장로님이셨습니다. 무슨 말로 표현해야 이분들의 인간됨을 가장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이분들이야말로 바로 IQ나 EQ와 SQ가 잘 조화된 건전한 정신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인성이야말로 가장 온전한 지력과 건전한 정신, 그리고 거기에다 신적인 의지까지 겸비한 사람으로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간상인 것입니다. 이런 마음들은 IQ나 EQ만 가지고는 어렵습니다. 거기에 바로 SQ인 영적이고 의지적인 신앙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가 바라고 고대하는 인성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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